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문열 평역 삼국지 (문단 편집) == 특징 == >우리나라의 삼국지 중에서 [[김구용]] 선생의 삼국지는 거의 대역(對譯)이 가능할 만큼 충실히 모본을 따랐고, 월탄삼국지는 대강 의역한 듯 싶다. >따라서 판본을 모종강본으로 결정하자 이내 번역 방식에 문제가 생겼다. 그대로 번역만 한다면 약간 문장이 현대적이 되고 본질적으로 앞서 말한 두 삼국지와 다를 바가 없고, 따라서 쓸데없는 노력의 중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 다음에 참고로 떠오른 것이 일본의 요시카와 에이지나 진순신의 방식이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나는 몇 가지 방식을 절충하기로 했다. 전체의 구도는 모본을 따르되, 시와 평문(評文)은 가감하거나 내 자신의 것으로 대체하고, 필요한 곳은 변형, 재구성한다는 것이었다. >---- >-구판(민음사판) 1권, '삼국지를 평역하면서' {{{#!folding 구판 작가의 말 ▼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흔히 우리가 『삼국지』라고 부르는 책에 대해 여기서 새삼 장황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삼국지』는 적어도 수백 년간 민간의 얘기꾼들, 저잣거리의 재간꾼, 불우한 서생(書生), 할 일 없는 문사(文士) 등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고 정리돼온 역사소설이다. 우리가 흔히 『삼국지연의』의 저자로 알고 있는 나관중(羅貫中)은 그 마지막에 나타나 이전에 있던 모든 것을 수집하고, 취사 선택과 정리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시킨 사람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정사(正史)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와 용의주도하게 비교, 검토해가며 — 흔히 일곱 푼[分]의 진실과 세 푼의 허구로 얘기된다 — 완결된 나관중의 경이로운 작업 뒤에도 『삼국지』는 여러 판본(版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체제나 평문, 곁들인 시(詩) 따위의 차이로, 오늘날 중요하게 드는 것만도 홍치본(弘治本 또는 嘉靖本), 이립옹본(李笠翁本), 이탁오본(李卓吾本), 모종강본(毛宗崗本) 등이 있다. 내가 이 평역 『삼국지』를 시작하기 전에 굳이 대만을 찾은 것은 이미 전해지지 않거나 전해지더라도 우리로서는 입수할 수 없다고 알려진 여러 판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길지 않은 체류기간 동안 나는 여러분의 도움을 입어 다행히도 이립옹본을 제외한 위의 여러 판본을 모두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검토한 결과 기대와는 달리 각 판본의 우열은 대개 시대순으로 나왔으며, 결국 그 힘든 수집에서 내가 얻은 것은 어째서 오늘날 모본(毛本)만이 살아남게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삼국지』를 평역하면서 모본은 그 앞 이탁오본(원명은 李卓吾先生批評三國志)에서 역사나 인물에 관한 평(評)과 시(詩)를 나름의 안목에서 바꾸고 김성탄(金聖嘆)의 서문을 단 것인데 (여기 대해서는 김성탄의 이름만 빌렸을 뿐, 위작이라는 주장이 많다) 오늘날 우리나라 『연의 삼국지』의 대부분이 그걸 역본(譯本)으로 쓰고 있다. 참고로 말하면 우리나라의 『삼국지』 중에서 김구용(金丘庸) 선생의 『삼국지』는 거의 대역(對譯)이 가능할 만큼 충실하게 모본(毛本)을 따랐고, 월탄(月灘) 『삼국지』는 대강 의역(意譯)한 듯싶다. 따라서 판본을 모종강본으로 결정하자 이내 번역 방식에 문제가 생겼다. 그대로 번역만 한다면 약간 문장이 현대적이 되고 매끄러워질 뿐, 본질적으로는 앞서 말한 두 『삼국지』와 다를 바가 없고, 따라서 쓸데없는 노력의 중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다음에 참고로 떠오른 것이 일본의 요시가와 에이지[吉川英治]나 진순신(陳舜臣)의 방식이었다. 이 역시 참고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고(故) 김광주(金光洲) 선생의 그 도입부에서 독창을 보이신 것 외에 대개는 요시가와의 아류라는 혐의가 가는 것들이었다. 일본식의 중국 이해가 간간 눈에 거슬리는 데다 연대와 사회상이 잘 맞지 않는 곳도 더러 보였다. 진순신의 경우는 아직 씌어진 지 얼마가 안 돼 그 아류는 눈에 띄지 않는데, 무거운 것을 너무 가볍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나는 몇 가지 방식을 절충하기로 했다. 전체의 구도는 모본을 따르되, 시와 평문(評文)은 가감하거나 내 자신의 것으로 대체하고, 필요한 곳은 변형·재구성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특히 힘주어 밝혀두고 싶은 것은 변형과 재구성의 의도이다. 그것은 구태여 내 『삼국지』를 다른 것과 구별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삼국지』에다 현대적 소설 감각을 주기 위함 쪽에 더 큰 목적이 있었다. 흔히 『삼국지』가 우리에게 재미있고 유익하면서도 어딘가 허황된 전설이나 신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인물들의 등장 방식 탓인 듯하다. 어디서 무얼 하던 사람인지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한번 등장하면 곧 천하의 영웅이요 관인후덕한 군주거나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하는 재사(才士) 또는 만부(萬夫)를 홀로 이겨내는 신장(神將)이 된다. 따라서 도입부와 군데군데 필요한 곳에서 나는 변형과 재구성을 통해 중요한 인물들에게 리얼리티를 주려 했다. 그러나 그 변형과 재구성은 철저하게 정사에 의지한 것이라 독자를 한낱 말재주로 현혹시켜 역사를 그릇 알게 하는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다음 이 『삼국지』의 특색으로 밝혀두고 싶은 것은 내가 곁들인 평문이다. 그 평문을 활용하면 이 『삼국지』 한 권으로 얘기하지 못할 게 없다. 혁명, 권력의 정통성, 전쟁 같은 것들뿐만 아니라, 역사·철학·과학까지도 모두 거기 끌어들일 수 있다. 처음에 내가 가장 야심을 부린 곳도 이 부분이었는데, 결과는 솔직히 부끄럽다. 모든 것은커녕, 처음에 내가 의도했던 것도 다 얘기한 듯싶지 않다. 그러나 이 『삼국지』의 한 특색을 이룰 것임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에서 감히 밝힌다. 끝으로 하나 더 말할 것은 뒷부분에서의 변형이다. 원전은 제갈량의 사후가 거의 책 한 권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나는 그 3분의 1로 줄여버렸다. 어차피 정사가 아닐 바에야, 박진감과 흥미에서 현저하게 그 앞부분에 떨어지는 얘기들을 장황히 늘어놓을 필요가 없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무턱댄 삭제가 아니라 주의 깊은 요약이었던 만큼 중요한 사실(史實)은 원전과 다름없이 남아 있다. 이제 사 년 사 개월에 걸쳤던 곤혹스러웠던 작업은 끝났다. 내가 여기서 곤혹스럽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일간지 연재라는 발표 양식 말고도 이 작업이 순수한 문학적 창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이는 삼십 대 중반으로 접어들었지만 겨우 등단 사 년차의 신예 작가에게 『삼국지연의』 평역이 온당한 창작 활동일 수 있는가, 하는 울적한 자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면 반드시 지난 사 년이 시간과 재능의 낭비였던 것 같지도 않다. 세월이 가면 똑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 방식과 이해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이제 이 땅에서 번역되거나 재구성된 『삼국지』는 대개가 한 세대 가까이 오래된 것이 됐다. 『삼국지』가 이 이상 더 읽혀서는 안 될 책이라면 모르되, 그게 아니라면 이 작업은 이 시대의 누군가가 해야 했다. 거기다가 듣기로 젊어서는 『삼국지』를 읽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중국 방문 때 들은 말을 허술하게 인용했다. 원래 속담은 ‘젊어서는 『수호지』를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중국인들의 속담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이 『수호지』를 읽고 도둑 떼에 들까 봐 걱정한 부분은 빠뜨린 게 민망스러우나, 늙어 『삼국지』를 읽는 해악은 뒤집어보면 읽은 젊은이에게 유익함으로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어쨌든 부정확한 속담 인용은 여기서 뒤늦게 정정한다.- 평역자 주).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삼국지』에는 젊은이들의 용기와 포부를 길러주고 지혜와 사려를 깊게 하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나를 통해 그 풍성한 『삼국지』의 과일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그러잖아도 꾀 많은 늙은이들이 더욱 잔꾀에 밝아질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지난 사 년여의 내 작업이 반드시 뜻없는 일이 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1988년 3월 李文烈||}}} 전체적으로는 모종강을 따라가되 이문열의 스타일에 맞게 개작되었다.[* 원문의 정직한 번역을 추구하는 21세기의 감수성과는 달리 이문열 삼국지의 초판이 나온 1988년에는 요시카와 에이지 스타일의 개작에 대한 반감이 덜했다.] 현대소설의 문체로 번역을 했고, 중간 중간에 작가의 생각을 많이 덧붙여서 만들어졌다. 문체가 매끄러워서 현대소설을 읽는 감각으로 미려한 표현을 즐기면서 읽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사실 문체면에서만큼은 평역 삼국지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이문열 자체가 맛깔나게 글을 잘 쓰는 데다가, 특유의 호흡과 문체가 이런 류의 군담소설 내지는 역사소설과 가장 잘 어울리기도 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는 "황제를 위하여"가 삼국지와 가장 호흡이 비슷하다.[* 비슷한 게 아니라 완전히 똑같다. <황제를 위하여>라는 작품은 고전 소설 양식을 패러디한 것으로, 삼국지연의라는 고전 소설을 현대에 맞춰 평역한 것과 완전히 똑같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굳이 원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좋은 소설인건 맞지만 좋은 '평역' 소설은 절대 아니다. 평역의 핵심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논리적으로 서술하는게 중요한데 이문열 삼국지는 이부분에서 매우 심각한 오류와 논리적 비약을 보여주고 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후술할 평가 부분 단락을 참조하자.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 만족해서 '''본래의 삼국지연의'''도 이렇구나, 라고 도매금으로 여기거나 아예 그 이상의 관심을 끊고 찾아서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역사를 정확히 알고 싶다면 연의가 아니라 아예 사서를 챙겨 봐야 하지만 녹록지 않다. 일단 공식 출판된 사서 번역본이 있기는 하나 문제가 참으로 많다. [[김원중(번역가)|김원중]] 문서 참조. 이외에도 파성넷에서 정사 번역을 올려 놓았고, 실제 한국 삼국지 팬덤에서도 이 번역본을 중심으로 기타 부수자료([[자치통감]] 등)와 함께 정사를 얘기한다. 한학을 어느 정도 배운 팬들의 경우 본인이 직접 원문을 번역하는 시도를 하기도 하는데, 원문을 보는 것이야 굉장히 좋은 일이지만 번역본을 만드는 것은 그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즉, 기본적으로 한 글자 한 글자의 번역에 신중하고 정확해야 하는 것이 한문 번역이니만큼, 박사급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번역한 것은 기본적으로 신뢰도의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문열이 이 작품을 연재할 때만 해도 [[냉전]] 시대였기 때문에 중국 방문이 불가능에 가까웠고, 2000년대와 달리 삼국지 팬덤도 두텁지 않았으며 자치통감 등의 사서도 대만을 통해서 한문 원본을 구해야 했다. [[모종강]]본 연의를 '''직접 번역'''했던 과거 문단 선배들이나 '''일어중역'''을 참고한 이들과 이문열은 '''중화권'''의 자료를 섭렵하려고 했던 노력은 가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문열이 [[한문]]이 아닌 중국어로 된 대만의 2차 연구자료를 해독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안 되었을 것이고, 1980년대라면 중국에 갔어도 어차피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평가도 있다. 중국에선 "황건기의" 등 민중주의적 스타일의 해석이 농후했고, 유비대신 조조 덕질이야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레닌 사관 때문에, 구체제를 존속시키려고 한 유비가 상당히 비판받았다. 문화대혁명 시절 [[비림비공운동]](공자와 [[린뱌오]] 비판하는 운동)으로 이 경향은 더욱 심해졌고, 사인방이 몰락한 후 이런 경향은 조금 사그라들지만, 조조는 확실히 재평가되었다. 이문열 옹호측은 어차피 나관중 창작의 [[삼국연의]]가 역사서도 아닐 뿐더러 현대에 재창작한 역사소설이 딱히 실제 사실에 딱 맞아야 하는 것이 작품성의 기준도 아니며, 어차피 이들의 비판의 근거는 자신들의 팬덤내의 컨센서스이지 학문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논거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문열은 순수하게 소설을 쓴게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두고 평가하는 평역 소설을 쓴것이다. 따라서 평역의 기반이 되는 논리가 맞아야 하는데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는 논리적 비약이나 자료의 오류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이다.[* 이문열 삼국지에서 비판받는 부분은 상당수가 이문열이 평가한다고 중간에 끼워넣은 사견부분이다.] 그리고 연의와 비교해 정사에서는 이러이러하다고 소개하는 부분에서도 오류가 많다는 점도 비판을 받는다. 정사에 버젓이 나오는 내용을 정사에는 없는 내용이라고 거짓 정보를 알려준다면 이것은 역사왜곡이지 소설의 영역이 아니다. -- 나관중 연의나 이전의 평화삼국지처럼 무협 판타지로 썼으면 이런 비판도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삼국지를 전공한 중문학자 [[정원기]] 교수는, 본문에 충실한 번역이 없었었던 걸 아쉬워하면서도 황석영 삼국지보다 이문열 삼국지를 오히려 더 높이 평가했다. 다만 아래 평가내용을 보면, 독자의 관점에서 이문열 삼국지가 내용적으로 더 낫다는 의미는 아니라, 학자의 관점에서 황석영 삼국지의 번역방식에서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흥미도나 소설 구상 면에서 평가하면 [[이문열]]이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원문 번역에서 오역한 부분이 많아서 [[리동혁|어느 중국 교포]]가 [[삼국지가 울고있네|무려 1천 군데가 넘는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인명인 '예양(豫讓)'을 지명으로 오역하는 식이다. '''이런 걸출한 작가의 번안본이 나오기 전 제대로 된 정역본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 [[백화문]] 원문을 기준으로 적벽대전 부분인 43~50회 내용을 집중 검토한 결과 [[황석영 삼국지|황씨의 삼국지]]는 중국 옌볜인민출판사의 '삼국연의'와 동일 오류가 반복되고 문장 흐름도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그 문제를 두고 모 일간지에서 반론·재반론을 거듭하다가 황석영씨 측에서 감정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토론을 중지하고 말았다.[* 당시 정원기 교수는 황석영 삼국지가 "정역이나 개역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며 "원작에 충실한 표준판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해당 토론은 마지막에 황석영이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니 시비 걸지 말리는 요지의 발언을 남기며 감정적으로 나와 논쟁이 중지되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146299|#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148054|#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148391|#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149175|#4]]) 정 교수의 입장에서는 정역이라고 큰 소리치는 황석영보다 번안작을 낸 이문열이 훨씬 낫게 보였을 것이다.] '''그만한 대형작가라면 이문열이나 장정일처럼 번안본을 내는 게 더 당당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00910.010380750490001|출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